又春巨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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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test@test.com)작성일2011-12-26조회수20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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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春巨影 - 시조공묘역 조성의 발자취
엄재영 (대전종친회 부회장, 대종회 지도위원) 2009년은 조부님이신 嚴秉彦 公께서 작고하신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조부님께서는 그 삶으로써 후손에게 숭조상문(崇祖尙門)이 어떤 것인지를 직접 보여준 분이시다. 이번 영월엄씨 대종회 30년사 발간을 기회로 조부님의 숭조상문의 정신과 업적을 많은 종친들과 나누고자 이 원고를 작성하게 되었다. 이에 앞서 嚴秉彦 公(1909-1989, 號 又春)의 주요약력은 다음과 같다. 조부님께서는 군기공파 지평공계 25세손이시며, 영월공립보통학교를 마치시고 단양군 영춘면 면장을 역임하셨다. 면장을 마치신 후 영월군 남면 연당리에서 양조장을 경영하였다. 영월지역 종친회를 만드시고 초대 종친회장을 역임하셨으며(1965-1984), 1983년 중앙종친회 부회장에 선출되셔서 종친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셨다. 1973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당선되셨으며, 한학에 조예가 깊으셨기에 1976년에는 성균관으로부터 영월 鄕校典校에 임명되어 5년간 직무를 수행하셨다. 애향심도 매우 깊으셨기에 연당중학교 설립위원장을 맡으시면서 연당중학교 설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다하셨다. 슬하에는 필자의 부친이신 嚴亨燮 宗親과 두 분의 따님을 두셨다. 嚴秉彦 公께서는 엄씨 문중이 始祖公을 위시한 10세조까지의 66기의 묘를 실전하게 된 것을 매우 아쉬워하셨다. 영월 엄문을 생각하는 마음이 남다르셨기에 이전부터 늘 시조공의 묘역을 조성하고자 하는 뜻을 품고 계셨다. 하지만 일제치하, 6․25 동란 등으로 인하여 시조공 묘역 조성을 위한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러나 상황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이 사업을 언제까지나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하신 조부님께서는 본인이 중심이 되셔서 이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심하셨다. 1965년 조부님께서는 영월지역 초대 종친회장을 역임하시면서 종중의 뜻을 모아 체계적으로 시조공 묘역 조성 사업에 착수하셨고 그 결과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837번지에 300평 규모로 시조공 묘와 2세조에서 10세조까지의 위패를 모시는 시설을 조성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지금과는 달리 국가적인 경제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묘역이 현재와 비교하여 많이 협소하였지만 그동안 실전된 영월 엄문의 시조공 묘역을 갖추고 시조공 시향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사업이었다. 또한 비록 작지만 묘역이 조성되었기에 다른 종친들의 숭조상문의 정신을 이끌어 낼 수 있었고, 결국 조부님의 시조공 묘역 조성사업은 현재와 같이 성역화 된 묘역을 갖출 수 있게 된 첫걸음이 되는 단초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그 후 1978년부터 시조공 묘역 확장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국내외 종친들이 갹출한 거액의 성금을 바탕으로 시조공 묘를 크게 조성하고 실전된 10세 선조들을 위한 中祖壇을 축조하며 묘역 전체를 미화, 단장하는 성역화 사업을 1990년 10월에 완성하게 되었다. 조부님께서는 안타깝게 1989년에 작고하셨기에 위 성역화 사업의 완공을 직접 목도하지는 못하셨지만, 영월 엄문의 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시조공 묘역 조성사업이 다른 종친들에게도 전파되어 시조공 묘역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띠게 되었을 때 조부님의 기뻐하셨을 모습은 아직도 필자의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다. 2009년은 영월 엄씨 대종회가 발족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그 동안 역대 회장님을 비롯한 임원진들과 많은 종친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대종회는 많은 발전을 거듭하여 왔다. 그러나 아직도 무엇인가 부족한 점이 있다. 이러한 부족한 점을 메우고 영월엄문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엄문을 사랑하는 정신이 모든 종친들에게 널리 전파되어야 한다. 숭조상문의 정신을 그 삶으로써 보여주신 嚴秉彦 公의 모습은 감히 모든 종친들의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영월 엄씨 대종회 30주년을 기념하여 이렇게 글로 만들었다. 끝으로 고인의 슬하에 후손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嚴秉彦 公의 외아들이자 필자의 부친이신 嚴亨燮 宗親(號 靑岩)께서는 婦人 李秉默 女史 사이에 3남 1녀를 두셨고, 초등학교 교감, 민주정의당 중앙위원, 대한경로당 남면분회장을 역임하셨으며, 대한민국 근정포장(勤政褒章)을 수상하셨다. 조부님의 숭조상문의 정신은 후손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져 필자의 모친이신 李秉默 女史께서는 1988년 효부상을 수상하셨고, 2006년 시향대제에서 공로패를 수여 받으셨다. 嚴亨燮 宗親의 長男이자 필자인 엄재영 종친은 현재 대전에서 대전복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妻 이창월과 사이에 아들 복현 군(법학박사수료, 연세대 로스쿨 재학)과 딸 소연 양(간호조무사 재직 중)을 두고 있다. 次男 엄재석 종친은 GS건설을 거쳐 현재 한양건설 기술본부장 상무에 재직 중이며, 妻 박윤경과 사이에 딸 유현 양(미네소타 하이스쿨 교사)과 주현 양(뉴욕주립대 재학), 아들 태현 군(밸리하이스쿨 재학)을 두고 있다. 三男 엄재선 종친은 현재 제천에서 수학전문학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며, 妻 옥영숙과 사이에 딸 지현 양(연세대 재학), 아들 성현 군(을지의대 재학)을 두고 있다. 長女 엄재남은 현재 제천 송한교회에서 목사로 목회 중인 한동원 사이에 아들 한주영 군(세명대 재학)과 딸 한이슬 양(강원대 재학)을 두고 있다. 후손들 모두 嚴秉彦 公의 엄문사랑의 정신을 가슴에 지니고 엄문을 빛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이다. 이들 후손 모두가 엄문을 빛낼 수 있도록 기원해 주실 것을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 서두에 소개된 사진은 조부님께서 영월지역 종친회장으로 재임하실 때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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