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온공(有溫公)
始祖로부터 11世孫 諱有溫公은 高麗 恭愍王初期(1353~1374年)에 아버님 諱俊公과 府使諱義生公의 따님이신 鄭氏와의 사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有溫公은 高麗 恭愍王때 東北面 兵馬使 李成桂 휘하에서 元軍과 대전하고 남해에 출몰하는 倭敵을 토벌하는 등 武功을 세우고 李成桂가 1388年(우왕14年)에 요동정벌을 나갔다가 위화도에서 回軍하여 우왕을 廢하고 昌王을 세운 다음 軍權을 장악한 얼마후 朝鮮王朝를 開國할 때 함께 協力하여 開國原從功臣에 오르셨습니다.
朝鮮建國 직후의 混亂期에 八王子들의 王位爭奪문제로 두 번이나 왕자의 난이 있는 동안 有溫公께서는 크게 개탄하며 협력하지 아니하여 王位에 오른 太宗은 1401年 太宗元年(辛巳) 2月2日 金仁貴전大將, 前監嚴有溫公 등 28人을 外地에 귀양(流配)보냈습니다.
그러나 太宗이 죽고 세로 왕위에 오른 世宗大王은 太祖時節의 舊臣들을 다시 중용하여 1418年(世宗卽位 元年) 9月15日 禹博을 中軍摠制로 嚴有溫公과 金斗南을 左軍同知摠制(從二品)로 李叔畝를 右軍同知摠制로 삼게 되어 공께서 다시 관직에 나가셨다. 世宗大王이 上王을 모시고 平山에 行次하실 때 領議政柳正顯 등 대신들과 左軍同知摠制 嚴有溫公이 御駕를 扈從(王駕를 모시고 따라감)하였습니다. 이해 1419年 12月17日 별세하시어 나라에서 賻儀로 종이 70권을 내리셨습니다.
配位貞夫人은 密陽朴氏이시며 長子克仁을 남기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