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야공파 校理公系 錦城宗中
1. 금성종중의 묘역 성역화
서기 1995년 당시 임원회의(회장:엄규섭)에서 결의에 의하여 타인 소유 토지 230여평을 구입하여 종중의 성역지로 조성하기 위하여 울진지역 일가친척 전원이 총 동원되어 역사한 결과 완전 성역지로 만들어져
17世 諱 仁近 進士公, 18世 諱 春 忠順尉公, 19世 可賢 將士郞公
3代의 祭壇을 設檀하고 해마다 시향을 봉행하여 오다가 20世 縝 中直大夫 21世 慶夏 嘉善公의 묘소가 강원도 삼척 가곡면 풍곡리 덕풍 첩첩 산중 악산에 계시고 교통도 너무나 불편하여 부득히 2004년 윤 2월에 기존 제단을 증 개축하여 단장하고 그 앞으로 2분내외분을 모시고 매년 5대 내외분의 시향을 함께 봉행하니 매년 100여명의 후손들이 참배를 하여 종중의 자랑이라 할 수 있다.
영월엄씨 복야공파 교리공계 22世 金城里 入鄕祖 諱 璆 嘉善公께서는 西紀1719年(肅宗43年)에 출생하여 西紀1783年(正祖7년)에 卒하였으며 享年 64才였다.
公은 벼슬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林泉을 찾아 이곳 劒城里에 정착하여 書農을 즐겼으며 슬하에 다섯아드님을 두었으며 오늘날 후손은 1,200여명으로 번성하여 사회 각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활동하고 있다.
2. 금성종중의 공적 내용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경북 울진군 북면 검성리 산 119번지와 120번지의 산림 48정보(약 14,400평)을 일제 강점기인 서기 1920년(대정 9년) 8월 21일부터 서기 1921년 4월 12일까지 약 9개월간 인근 부락 토호 박학래와 일족들이 자기들의 산이라고 주장하여 추종자들을 동원하여 강제로 벌목하므로 졸지에 민둥산이 되어 부득히 諱 柱英公외 10인이 원고가 되어 벌목자 23인을 서기 1921년 8월 15일 대구지방법원에 손해 배상청구 소송을 재기하였으나 일제 추종자들의 막강한 위력앞에 서기 1922년(대정11년) 5월 29일 폐소당하여 즉시 고법에 항소하였으나 항소 취하로 1심 판결로 확정 받았으나 서기 1920년부터 3여년의 걸친 쟁송으로 소유권을 완전히 찾았으나 소요된 경비 조달 과정은 어쩌다 말로 표현하오리오만 문서가 없어 전해져 오지 않음으로 휘 주영공의 증손자 準鎔이 대구 지방법원에서 당시 판결문을 찾아 이를 토대로 글을 짓고 써서 서기2004년 4월 18일 공적비를 세웠으며 오늘날 이산에서 송이를 채취하여 종중을 운영해오고 있다.
11인 유공자 명단
諱 柱英公 諱 富永公 諱 斗永公 諱 龜永公 諱 柱慶公
諱 柱國公 諱 柱奕公 諱 柱根公 諱 柱河公 諱 義燮公
諱 鍾白公
3. 교리공계 금성종중 역대 회장
대 |
성 명 |
세 |
재임기간 |
비 고 |
1 |
엄기덕
(嚴基德) |
29 |
1974~1987 |
1.입향조 묘소 축조공사 및 비석교체
2.울진종친회 창립 준비 |
2 |
엄규섭
(嚴圭燮) |
28 |
1987~1997 |
1.성역지 조성, 제단설단 공적비 건립
2.울진종친회 초대 회장 |
3 |
엄세용
(嚴世鎔) |
30 |
1997~1999 |
|
4 |
엄성섭
(嚴成燮) |
28 |
1999~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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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엄준용
(嚴準鎔) |
30 |
2003~2005 |
1.성역지 증개축(제단), 20,21세조이장
2.입향조 비석, 공적비 교체 건립 |
6 |
엄상기
(嚴常崎) |
28 |
2005~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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